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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2018-10-18




로 라이프(Lo-Life)는 꽤 간결한 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혀 복잡하지 않은, 몹시 단순한 '라이프'.






“You are a low-life!”

“야, 이 질 낮은 XX야!”


“You’re right. LO is my Life!”

“맞아 난 아주 저질이야. Lo는 내 삶이야.”






엄지와 검지를 펴서 L 모양을 만드는 것이 로 라이프의 시그니처 포즈 (출처: complex.com)



LA블러드(LA Bloods)는 빨간색을, 라이벌인 크립스(Crips)는 파란색을 입었다. 이렇듯 보통의 갱들은 저마다 상징하는 색이 있다. 색으로 자신들을 정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확실한 정체성과 이에서 오는 소속감, 그거다. 



L.O.V.E 럽~ (출처: powerhousebooks.com)



로 라이프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브랜드로 자신들을 정의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폴로 랄프 로렌(이하 폴로)을 휘감는 스타일, 나아가 폴로만을 입는 삶 자체를 로 라이프라 칭했다. 이는 곧 그러한 현상을 추종하는 집단을 일컫는 대명사가 된다. 



똑같은_거_절대_아님.polo (출처: huckmag.com)



80년 대, 미국 디자이너들이 지은 또렷하고 볼드한 디자인의 옷들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용맹함-이라 쓰고 뵈는 게 없음 이라 읽자-을 마음껏 드러내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그 중 폴로는 특히, 힙합 문화를 추앙하는 뉴욕의 갱들 사이에서 최고의 존재였다.



베르사체 선글라스를 쓴 비기 스몰스 (출처: huffingtonpost.com)



폴로와 함께 베네통, 게스, 노티카 등이 거리를 장악했던 80년 대 뉴욕. 흑인들에게 있어 타미 힐피거는 썩 성에 차는 모양새가 아니였고, 아이조드는 이미 지나간 트렌드라 여겨졌다. 심지어 베르사체는 비기 스몰스(Notorious B.I.G.)가 상대하기 이전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무려 베르사체가...! 그들에겐 오직 폴로만이 최고였고, 디자이너 ‘랄프 로렌’을 신처럼 숭배했다. 지갑 속에 랄프 로렌의 사진을 넣고 다닐 정도였다니 말 다했지.



온화한 미소의 랄프 할아버지. #빵끗 #건치 (출처: catwalkyourself.com)



돈, 여자 그리고 옷. 로 라이프에겐 이 세 가지가 전부였고, 이를 위해 그들은 폴로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을 마시고, 여자를 꼬시고, 물건(특히 폴로 옷)을 훔치고, 싸우고.. 오직 이런 ‘짓’들을 하기 위해 폴로를 차려 입었다. 클럽에 갈 땐, 다섯 벌의 폴로 셔츠를 한 번에 입고 수시로 바꿔 입었다나 뭐라나. 하여간에 폴로에 살고 폴로에 죽는 그들이었다.



‘아 빌립 아캔플라이~♪’ (출처: powerhousearena.com)



이들은 매 주말마다 도시를 뒤집어 놓기 일수였다. 대부분 사회적 지위가 낮고 이렇다 할 직업이 없던 이들은 맨하탄 한복판 내로라하는 고급 백화점의 폴로 매장을 급습해 옷가지들을 마구잡이로 훔쳐 나왔다. 영특한(?) 점이 있다면 물건을 훔치러 갈 적에 바지 속에 여성용 거들을 입었다는 것. 꽉 끼는 거들 속에 훔친 옷가지를 집어 넣어 허리춤이 부푸는 것을 막아 점원과 경비의 눈을 속였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 영화를 보며 상점에서 술을 집어 유유히 걸어나가는 일상을 즐겼다.



폴로 곰돌이 니트를 맞춰입고 즐겨 ‘훔치던’ 술 ‘올드 잉글리시 800’을 들고있다. (출처: splashysplash.com)



이들 무리는 한 둘이 아니었기에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한눈에 띄는 P-Wing 점퍼와 스노우 비치 재킷 (출처: defunkd.com)



폴로의 수많은 아이템들 중 두 개의 L 위에 P-Wing이 겹쳐있는 프린팅 티셔츠나 커다란 로고가 찍힌 비비드한 색감의 옷들이 무리 사이에선 가장 핫했다. 특히, 폴로의 스노우 비치 재킷은 여러 브랜드에서 모티브를 얻어 갈 정도로 의복사의 한 획을 긋는 아이템이 된다.



옷장에서 자는 거 아님~ (출처: curation.nyc)



워낙에 확실한 스타일과 밀도 높은 군집력 덕에 로 라이프는 일시적인 갱 문화 나부랭이로 끝나지 않는다. 뉴욕을 넘어 캘리포니아에서 일본까지 뻗어나가며 패션 스타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무자비한 짓은 배제된, 그들이 옷을 입는 방법과 브랜드를 추종하는 행위에 한해서 말이다.



이거시 바로 니뽄의 로 라이프입니데스 (출처: instagub.com)



복고 열풍이 온 지구를 휩쓸었고, 빈티지 무드가 너무나 공공연해진 오늘의 패션 신에서 폴로를 빼놓고는 순탄한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 지금도 여전히 로 라이프를 즐기는 크루들은 존재하며, 옛날을 곱씹는 것이 유행인 요즘의 스타일에서 폴로는 감초같은 역할을 톡톡이 해내는 중이다.



‘로 라이프’ 자체를 이름으로 건 브랜드. 25년 째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 lo-life.com)



10여 년도 더 전에 폴로 캡을 쓰고 폴로 피케셔츠를 입고 폴로 스니커즈를 신고 수학여행을 간 기억이 있다. 이제와 보니 난 지구 반대편에서 로 라이프를 즐기는 중이었다. 



이런 스타일이 유행했던 시절… (출처: google.com)



내가 제법 멋진 중학생이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CREDIT


에디터 김형선






<참고>

complex.com

classicnystreetgang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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