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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19-01-29


호소다 마모루의 다섯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는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절이다.





 조금 부끄러운 일화지만 유년 시절 누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내 방이 좁은 것에 불만이 많았는데 누나가 없다면 누나 방을 내가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매우 악랄한 바람을 단순하게 품었던 것이었다. 물론 누나는 집에 들어왔고, 누나의 방 역시 내 방이 될 수 없었다. 애초에 일어날 일도 아니었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면 그것이 뒤돌아보게 될 시간이 아니라는 것은 나이가 들어보니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철없던 생각을 소환하게 된 건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를 본 덕분이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까지, SF와 판타지의 경계 속에서 현실적인 성장담과 가족드라마를 녹여낸 애니메이션을 연출해온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잠재된 유년시절을 끌어올리는 낚싯대 같다.




 입김이 서린 창문을 닦아내는 소년 쿤은 창문에 입김을 불어넣고 제 손으로 닦으며 창 밖에 나타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쿤이 기다렸던 건 바로 부모님. 그리고 집에 돌아온 건 단 둘이 아닌 셋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새로 태어난 여동생. 어린 쿤에게 더 어린 여동생이 생긴 것이다. 놀란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보는 쿤에게 엄마는 사이좋게 지낼 것을,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줄 것을 부탁한다. 쿤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좋은 오빠가 되기에 쿤은 어렸다. 쿤은 어린 여동생에게만 신경 쓰는 부모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부모의 주의를 끌고 싶어서 응석을 부리고, 집안을 어지럽히고, 여동생의 낮잠을 깨운다. 하지만 부모의 신경은 온통 여동생에게만 쏠려 있다. 심통이 난다. 여동생에게 엄마와 아빠를 빼앗긴 것만 같다.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터트려도 그렇다. 그리고 자택근무가 가능한 건축가 아버지가 육아를 병행하고, 어머니가 오랜만에 직장에 복귀하고 난 뒤로 쿤은 더욱 심심해진다. 




 그런 어느 날 마당으로 나온 쿤은 평소와 달리 숲처럼 울창해진 풍경을 거닐다 한 여자를 만난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그녀의 손에는 붉은 반점이 있다. 쿤은 동생의 손에 있던 붉은 반점과 형태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그녀의 정체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쿤이 만난 것은 바로 여동생 미라이, 그러니까 미래의 미라이다. 그래서 이 제목의 작품도 <미래의 미라이>인 것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쿤이라는 네 살 소년이 여동생이라는 미지의 존재를 만남으로써 벌어지는 이야기다. 부모의 관심을 독점하던 소년에게 미라이는 처음으로 만나는 위기이자 처음으로 품게 되는 적의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 쿤이 만나게 되는 미래의 미라이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나 언젠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미지이자 현실이다. 쿤은 집 안에서 현재의 어린 미라이를 대면하지만 마당에 나가면 미래의 미라이를 만나게 된다. 다소 엉뚱하고 갑작스런 변화를 집의 내부와 외부 공간의 이동만으로 설득하는데 이 과정이 그리 터무니 없지는 않다. 중요한 건 결국 규칙이 아니라 정서이기 때문이다.




 호소다 마모루는 호소다 마모루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통해 보편적인 가족애와 성장담의 감동을 전하는 데 능한 감독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소녀(<시간을 달리는 소녀>), 전세계의 시스템과 연결된 오즈라는 가상 세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힘을 모으는 대가족(<썸머 워즈>), 늑대인간과 결혼해 낳은 늑대인간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자 안간힘을 쓰는 여자(<늑대아이>), 부모도 없고, 갈 곳도 없이 도시를 떠돌다 우연히 괴물로 인식될 만한 존재를 만나 그의 세상으로 가 성장하게 되는 소년(<괴물의 아이>)까지, 미지의 존재 혹은 세계와 대면하게 되고 그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대와 성장을 깨닫는 존재로 자라난다.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관이 끌어안은, SF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설정에 대한 현실감을 불어넣는 건 정밀한 규칙이 아니다. 호소다 마모루의 영화를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이끄는 건 결국 그러한 세계관 속에 자리하게 된 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인 감정에 있다. 소녀가 시간을 오가는 능력을 얻게 된 당위를, 전세계인이 쓰고 있는 일원화된 가상 시스템에 대한 가능성을, 늑대인간이라는 존재의 현실성을, 비현실적인 세계와 문명화된 현실 세계의 불명확한 경계를 따져 물을 필요가 없다.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에서 그 모든 가정과 환상은 가장 보편적인 울림을 주기 위한 특별한 외피로서 기능하는 장치 이상의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미라이> 또한 마찬가지다. 쿤이 미래의 여동생, 미래의 미라이를 거듭 만나게 되는 과정은 소년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모험담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소년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기 위해 다가온 시련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려하기 위한 선물 같기도 하다.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소년의 세계 속에서만 허락된 상상의 결과 같기도 하다. 쿤이 미래의 미라이를 거듭 만나며 깨닫게 되는 건 여동생과 가족의 존재가 단지 지금의 찰나만이 아닌 긴 시간을 공유하게 될 존재라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건 <미래의 미라이>가 비현실적인 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유년 시절을 지나온 관객 입장에서는 그것이 결코 단순한 개인의 경험으로만 여겨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우리 모두가 지나온 어린 시절을 환기하고, 그 시절을 지나오며 성장해온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래의 미라이는 어쩌면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될 관객들 자신일 것이다. 반대로 미래의 미라이를 만나게 되는 어린 쿤은 관객들이 되새기는 자신의 어린 과거일 것이다. <미래의 미라이>를 보는 관객 대부분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결국 관객들이 현재와 과거의 시공간을 초월하도록 이끄는 촉매 같은 작품인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은 사실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풍경 묘사를 통해 실제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데, 이는 비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현실적으로 설득하는 데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어린 소년이 집의 실내공간에서 마당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미래의 미라이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해서 터무니없기도 하지만 특유의 사실적인 작화를 통해 어린 소년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통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권유를 돕기 위해 마련된 순진한 착시처럼 느껴진다. 적당한 믿음을 권하기 위해 마련된 세밀한 복음이랄까.




 호소다 마모루는 초등학생인 큰아들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미라이>를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미래의 미라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네 살 아이의 시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됐고, 그 시절의 자신을 체험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호소다 마모루 역시 <미래의 미라이>를 통해 지난 성장을 뒤돌아보게 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육아를 경험한 부모 입장에서도 <미래의 미라이>는 특별한 공감대를 전하는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미라이>는 결국 우리 모두가 지나온 어떤 시절을, 어떤 세계를, 끝내 그렇게 성장한 자신을 돌아보고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과, 그 세계 속에 자리한 누군가의 손길과 체온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만드는, 관객을 위해 마련된 타임머신 혹은 주문인 셈이다. 지금의 나와 다시 한번 만나게 되는, 나 자신과 악수를 권하는, 외면할 수 없는 거짓말.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가 또 한번 통했다.











 


CREDIT


에디터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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