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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19-02-21


보통 어떤 것의 덕후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시작하는 경우 보다는 정신을 차려보니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덕후들 끼리 통하는 도구의 사용법과 지식을 습득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맥락이 생기고, 이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본 적 없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런 음악들을 찾아서 듣느냐는 질문이다. 다양한 음악들이 한국 문화 속에서 가지는 접근성에 대해 많은걸 시사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덕질에는 사람마다 나름의 기술과 노하우, 체계적인 접근이 있다. 하지만 묘하게도, 같은 덕후들 끼리는 서로 처음 만나더라도 이미 공유하고 있는 내용들이 있다 – 누가 언제 어떤 앨범을 냈는지 같은 것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한 덕후의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알아보자.





검색은 내 힘으로


흔히들 인터넷과 스트리밍이 음악과 청취자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놨다고 한다. 여기에는 개인의 음악 소유 여부보다 더 다양한 면모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한 맞춤형 큐레이션의 등장이다.


음원 차트나 스포티파이 같은 서비스는 새롭고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는 과정을 너무 쉽게 해준다. 이 과정에서 음악을 경험하는 개인의 주체성이 사라지고, 음악은 언제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소모품이 된다.


스포티파이는 거의 쓰지도 않는데 벌써 나를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준다. 치트키는 게임을 재미없게 만든다.


소중한 사람이 좋아하던 노래, 포장이 예뻐서 충동적으로 샀던 앨범,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고 찾아보게 된 가수. 개인이 어떤 작품을 경험할 때, 그 뒤에는 어떻게 그 작품을 알게 되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 작품을 경험했는지 같은 일종의 서사가 존재한다. 소모품과 소장품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감상을 만든다.


모든 스트리밍이나 큐레이션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음악을 찾는 과정에서 일정한 수준의 마찰이 있어야 찾은 음악들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들은 대부분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스트리밍과 알고리즘의 시대에 이 논리를 적용하면, 음악을 듣거나 찾을 때 이런 마찰을 일부러라도 지켜내야 한다. 이건 사실 느낌의 차이인데, 똑같은 알고리즘이 같은 음악을 추천 해 주더라도, 그 노래를 보고 일부러 선택해서 듣는 것과 자동재생으로 듣게 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유튜브가 이 과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 시티팝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할 때,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던 사람들의 추천 영상 피드에는 하나같이 마리야 타케우치의 플라스틱 러브가 떴었다.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시티팝을 “발견”하게 된 사람들에겐 마치 레코드숍에서 우연히 좋은 앨범을 발견한 것과 유사한 경험이 선사됐다.


일본 재즈는 들은 적이 없는데 유투브 추천에서 계속 떠서 처음 듣게된 Ryo Fukui 역시 유튜브가 사람들에게 “발견”시킨 뮤지션이다.


이제 음악을 막연히 좋아하는 일반인이 덕후가 될 수 있는 과정을 음악 발굴 포인트와 노하우 몇 개를 통해서 속성으로 알아보자.





호랑이굴로 들어가기


새로운 음악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창작자들에게서 직접 소식을 듣는 것이다. 뮤지션들 뿐 아니라, 이들이 속해있는 크루, 레이블 등을 팔로잉 하면, 들을 음악이 없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유튜브에 음악용 계정을 따로 만들면 이렇게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많이 올라온다.


그렇다면 이런 정보들을 먼저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돌부터 인디, 싱글부터 정규앨범까지, 발매되는 거의 모든 음악은 크레딧 섹션이 있기 마련이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악기 연주, A&R, 음원 배급등 작품이 공개되기까지 거친 모든 손들이 앨범과 음원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다.


여기서 찾은 음반 레이블들을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잉하면, 신곡이 발매될 때마다 바로 들어볼 수 있고, 모르던 뮤지션들도 자연스럽게 알게될 수 있다. 게다가 보통 중소규모 음반 레이블들은 꽤 뚜렷한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어서 대규모 기획사보다 감당하기 쉽다. 국내의 채널들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스톤쉽은 주로 힙합과 알앤비, MSB 사운드는 팝과 포크, 붕가붕가 레코즈는 밴드음악, 대략 이런 식이다. 반면, 포크라노스미러볼 뮤직처럼 장르를 초월한 음원 유통 채널들도 있다.


해외로 가보면, 주로 라운지 클럽음악을 커버하는 Kitsune, 재즈와 크로스오버로 유명한 Brownswood Recordings, 아델과 The xx등을 발굴한 XL Recordings, Lucy Dacus와 Snail Mail등 여성 인디 락 뮤지션들을 필두로 떠오르는 Matador, 프랑스 레이브씬을 대표하는 Edbanger, 스크릴렉스의 OWSLA와 Boys Noize의 BNR, 일본의 MTV격인 Space Shower… 정말 끝도 없다.


특히 해외 채널들을 덕질 할때는, 언어의 장벽이 꽤 높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나열된 소셜미디어 채널들에서 팔로잉을 하면, 그냥 영상이 새로 올라올 때마다 들어보면 된다. 노래가 마음에 들면 그때부터 번역기를 돌리는 거다.


일본어 1도 모르지만 일단 눌러서 들어본다.


이렇게 음반 레이블들을 파다보면, 호랑이굴은 어느새 앨리스의 토끼굴로 변해있기 마련이다. 같이 자주 작업하고 친한 뮤지션들을 알게 되고, 누가 어디에 소속해서 최근에 뭘 냈는지 알게된다. 어차피 자주 들어가는 소셜미디어에서 항상 이런 소식들이 있을 것이고, 음악은 이렇게 일상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덕질이 이정도 수준에서 끝날 수 있었다면 덕질이라고 불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차 창작자의 단계에서 한발짝 더 깊이 들어가면 있는 세계가 2차 큐레이션의 세계다. 위에서 말했듯이 큐레이션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합법적으로 뮤지션을 소개하는 채널들을 가려서 볼 필요는 있다.





라디오하면 라이브 음악이지


뮤지션들을 SNS에서 팔로잉 하다보면, 이들이 신곡을 홍보하러 이런저런 방송들에 출연했다고 인증샷이 올라오곤 한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MBC 난장,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하고,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공연하기도 한다.


이런 라이브 퍼포먼스 플랫폼을 직접 팔로잉 하는건 당연히 좋은 전략인데, 여기에 라디오를 포함시키면 시야가 확장된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서 라디오 방송국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치열하게 온라인 콘텐츠를 연구하고 제작한 곳들만 살아남았다. 


규모가 큰 NPR Music 이나 BBC Radio 1 도 있지만, 로스앤젤레스의 KCRW, 시애틀의 KEXP, 뉴욕의 WFUV, 미네소타의 The Current, 호주의 triple j, 영국의 NTS Radio 등 음악에 올인한 라디오 방송들도 많고, 이 채널들 모두 유튜브에서 활발하게 음악을 올리고 있다.





한번에 하나씩, 뮤지션에서 시작하기


다소 순식간에 너무 멀리 온 기분이 든다면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저 위의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덕후 한 명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고, 모두가 저런 방식으로 덕질을 하지는 않는다. 보통 개인이 관심있는 뮤지션과 레이블을 팔로잉 하는 정도가 덕후들의 최대공약수일 것이다.


한 번에 아티스트 한 명씩, 레이블 한 개씩, 장르 한 개씩. 하나를 찍고 끝까지 파보면 어디가 좋고 싫고가 보다 뚜렷해진다. 음원차트나 플레이리스트는 수평으로 넓다면, 덕질은 수직으로 깊이 파는 기술이다. 작게는 앨범 전체, 크게는 뮤지션의 모든 앨범을 들어보고, 그 다음 옆으로 옮겨서 레이블의 다른 뮤지션도 들어보고, 공연도 가보고. 이렇게 덕후가 되는 것이다.











 



CREDIT


에디터 황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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