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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19-02-26



사랑이라는 감정이 늘 뜨겁고 열렬할 것만 같지만 때로 사랑이라는 감정은 차갑고 나태하게 흐르는 시간으로 머무르기도 한다. 늘 가까이 붙어서 체온을 공유해야만 하는 것이 사랑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멀리 떨어져 시간을 되짚어보게도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은 때론 절대적이고, 때론 상대적이다. 때론 환희의 불꽃놀이처럼 반짝거리지만, 때론 애수의 늪지대처럼 질척거린다. <콜드 워>는 바로 그 뜨겁고, 차가운 시절을 지나며 새로운 세월로 접어들게 된 어느 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담담하고 건조해서 되레 그 안에 묻힌 갖은 사연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얼굴들 그리고 그 얼굴들의 노래. <콜드 워>는 그렇게 노래에서 시작된다. 정확하게는 폴란드 민요를 부르는 폴란드 사람들의 얼굴로부터 시작된다. 때는 1949년, 그러니까 유럽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전세계를 포화 속으로 몰아넣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로 전세계의 질서를 급속하게 양극화시키고 세계를 두 조각의 거대한 얼음으로 냉각시킨 듯한 냉전 초기 폴란드인의 초상과 노래를 제시하며 <콜드 워>는 시작된다. 


<콜드 워>라는 제목이 ‘냉전’이라는 단어 자체를 관통하는 영화라고 짐작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콜드 워>는 단순히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무언가를 동원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냉전이라는 단어가 보다 차갑게 느껴졌을 동유럽 폴란드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사랑과 반목을 거듭하는 두 남녀가 존재했던 어느 시대상을 병풍 삼아 그려지는 사랑이야기에 가깝다. <콜드 워>는 영화의 현실이 처한 시대상을 아우르는 제목인 동시에 영화의 주인공인 두 남녀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정서와 그 양상을 대변하고자 동원되는 언어처럼 느껴진다.




빅토르(토마즈 코트)는 폴란드의 명망 있는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발굴한 폴란드의 전통적인 민속음악을 주된 요소로 활용하는 공연의 음악 지휘를 맡은 가운데 이에 어울리는 인재를 발굴하는 일의 주축을 맡고 있다. 그리고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여인 줄라(요안나 쿨릭)에게서 남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그를 발탁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비단 공연단의 지휘자와 무용수라는 관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한 두 사람은 머뭇거리지 않고 서로에게 입을 맞추고 서로의 몸을 끌어안는다. 두 사람의 감정에 비로소 불이 붙는다. 그렇게 운명은 뜨겁게 다가온다.




빅토르와 줄라의 관계는 10년의 세월 동안 지속된다. 그 과정이 늘 순탄하고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에게 10년은 뜨겁게 달아올랐던 시절을 포함한 세월이기도 하지만 차갑게 식어내린 시절을 포함한 세월이기도 했다. 서로를 가깝게 끌어당긴 시간이기도 했지만, 서로를 멀리 밀어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프랑스 파리로 그리고 다시 바르샤바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 존재하는 두 사람의 10년은 사랑과 이별, 재회와 반목을 거듭하면서도 나이테처럼 자라나는 감정을 끝내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콜드 워>를 연출한 감독 파벨 포리코브스키는 폴란드 출신 감독이다. 그는 14살 무렵부터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간 뒤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를 오가며 성장했다. 그가 다양한 국가를 전전하게 된 것은 이별과 재회를 반목한 부모의 전력 때문이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여자는 17살의 나이에 자기보다 10살이 더 많은 의대생과 사랑에 빠졌고, 결국 결혼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을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남자는 구태의연한 사람이었고, 여자는 그에 동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잦은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이혼했다. 그리고 폴란드를 떠나고 싶었던 여자는 영국 남자와 결혼했고 아들과 함께 영국으로 떠났다. 그것이 파벨 포리코브스키가 이국을 전전하게 된 이유다.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쉽게 서로를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이들도 아니었지만 서로를 쉽게 밀어낼 수 있는 이들도 아니었다. 독일에서 새로운 아내와 살아가던 남자는 전부인이 된 여자와 재회해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각자 새롭게 꾸린 가정과 결별하고 두 사람은 다시 재결합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갈등은 그 뒤로 또 이어졌다. 외도를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40년간 이어졌다. 서로를 비난하는 갈등만큼이나 서로를 애호하는 갈망도 적지 않았던 세월이었다. 그런 세월을 보낸 뒤 마주하는 관계란 쉽게 무너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꽤 비슷한 시기에 숨을 거뒀고, 죽기 직전까지 3년여의 시간만큼은 이전의 반목이 무색할 정도로 행복한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서로에게 현실적으로 남은 것이 단 한 사람, 바로 서로밖에 없다는 것을. 파벨 포리코브스키가 자신의 부모가 모델이 된 사랑이야기를 영화화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그것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이야기라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모님을 다른 맥락으로 봤다. 대부분의 삶을 본다면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나는 그것을 아름다운 재앙으로 만들고 싶었다.” 감독의 말이다.




<콜드 워>에서 음악이 필요했던 건 그 이유였다.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부모가 현실에서 맺은 관계는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영화에서의 남녀에게는 그들을 강력한 운명으로 이끌어주고 있다고 이해될 수 있는 매개가 필요했다. 파벨 포리코브스키는 그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발레리나를 꿈꿨기 때문에 춤과 음악이 그의 구상 안에도 중요한 단서가 됐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국가가 후원해 타국에서 열리는 민속 공연에 참여해 망명을 기도하는 이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음악은 <콜드 워>의 이야기에 설득력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캐릭터로서 존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기도 한 파벨 포리코브스키의 전작 <이다>와 마찬가지로 <콜드 워>는 정방형에 가까운 4:3 비율의 흑백영화다. 대단히 고전적인 감상을 일으키는 이 형식성은 감독이 이 작품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콜드 워>는 컬러영화로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결국 흑백으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1950년대 폴란드는 전쟁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됐고 이로 인해 도시의 사람들은 어두운 무채색 옷을 입곤 했다. 그런 실제적인 삶이 느껴지는 시대를 선명하고 강렬한 색으로 보여주면 거짓말이 됐을 거다.” 


사실 <이다>에서의 흑백은 쨍하게 확장된 여’백’의 풍경을 살피도록 이끄는 것이라면 <콜드 워>에서의 흑백은 칠’흑’의 시대를 조우하도록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이다>가 어두운 시대로부터 생존한 이가 참담한 과거를 돌아보고 이를 통해 자아의 뿌리를 회복하는 이야기라면 <콜드 워>는 어두운 시대 속을 전전하는 이들이 시대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기 위해 사랑으로 연대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형하게 부서지는 <이다>의 흑백영상과 짙고 어둡게 잠식하는 <콜드 워>의 흑백영상은 결의 차이가 느껴진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부모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인 1989년에 사망했다. <콜드 워>의 원전이 된 두 남녀는 냉전의 종식을 목격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콜드 워>는 파벨 포리코브스키가 부모의 삶을 영화의 형식을 빌려 기록한 전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모의 삶을 영화로 승화시킨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모든 이의 삶이 영화에 어울리는 무대처럼 여겨질 수 없겠지만 저마다의 삶은 끝내 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낭만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콜드 워>는 88분에 불과한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이지만 막상 영화를 보게 되면 이 작품의 러닝타임이 물리적인 길이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몇 차례의 점프를 통해 건너가게 되는 10년의 세월 동안 치열하고 지난하게 변모하는 남녀의 관계와 그럼에도 끝내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는 결말부로 다다르는 과정을 지켜볼 관객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흔들고 감정을 비트는 것이 거창한 이데올로기에 질식한 세상의 형편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개개인의 삶을 억누르는 세계의 풍경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적막한 흑백영상과 잘 어울린다.




한편 차가운 냉전의 시대에서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갈등하며 사랑으로 갈망하는 빅토르와 줄라의 모습은 무채색의 흑백영상 안에서 끝내 유일하게 발색하는 색처럼 느껴진다. 얼어붙은 세상의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색을 발하는 건 결국 두 사람의 감정이다. <콜드 워>는 결국 모든 색들이 지워진 세계 속에서도 끝내 짙어질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색, 바로 사랑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세계를 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이었을 것이다. <콜드 워>는 바로 그 생존의 비결을 가리키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CREDIT


에디터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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