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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19-03-05


유행의 불꽃이 사그라든 후에 남겨지는 상황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흥미롭다. 오디션프로나 힙합 예능이 지금 소비되는 양상이라던지, 밴드 혁오의 현재 행보라던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품목별로 그 서사의 길이나 깊이가 다르겠지만, 비교적 최근 가장 흥미로웠던 현상이 시티팝의 유행이었다. 한때 힙함의 상징격으로 뜨거운 화두였던 시티팝은 분명 이젠 예전같지 않은, 뭔가 미묘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년 전 돌아다니던 힙스터 체크리스트. 마지막 장에 쇼와시대의 문화를 좋아한다는 항목이 눈에 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이미 존재하던 소규모 서브컬쳐에 힙스터 문화가 촉매가 되어 비교적 큰 주류문화의 파도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시티팝의 화학반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브컬쳐와 힙스터 문화, 그리고 주류문화의 상호작용이 보인다.






그래서 시티팝이 뭔데?


일단 가장 보편적인 설명을 하자면, 시티팝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하던 1970년대와 80년대의 일본에서 나온 대중가요다. 이런 배경을 가진 장르인 만큼, 시티팝은 낭만과 긍정,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공허함 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티팝은 사실 하나의 태도이자 문화다.


시티팝 앨범커버를 많이 제작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에이진 스즈키의 작품. 이런 뭔가 옛날 포카리스웨트 광고스러운 청량감과 낭만적인 밤의 공존이야말로 시티팝이다.


반면, 시티팝은 혼합된 음악적 장르들을 통해서 해석할 수도 있다. 애시드 재즈나 R&B, 보사노바, 신스팝, 락 등의 요소가 절묘하게 섞여있는데, 7-80년대 미국의 Motown에서 나오던 스타일이나 소프트 록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그루브가 충만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위의 두 구분이 왜 중요하냐면, 7-80년대 일본이 아닌 시간과 장소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곡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티팝이라는 장르의 핵심 요소는 일본이라는 위치가 아니라, 특정한 장르들의 혼합과 이를 이용한 특정한 감성의 표현이다.


한국의 70년대와 80년대는 결코 이런식의 낭만이 가득한 시기가 아니었고, 당시의 한국음악은 정부 주도의 “건전 가요”와 주로 락으로 대표되던 금지곡들이 가장 두드러지는 시기다. 음반 제작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하던 일본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시티팝은 80년대 중,후반이나 90년대의 곡들이 많다. 시티팝은 일본의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한창 이런 장르의 음악이 유행할 때 한국의 음악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 곡은 김현철이 작사,작곡 해서 1989년에 발매됐다. 이 해는 그의 1집이 발매된 해기도 한데, 그는 이 시기에 일본에 시티팝에 대해서는 몰랐으나 스무스 재즈를 좋아했다고 한다.






 “레트로”를 둘러싼 서브컬쳐


유행이 화학반응과 같다는 비유로 다시 돌아가서, 그 구성을 들여다보자. 서브컬쳐가 있고, 주류문화가 있고, 그 사이에 힙스터가 있다. 시티팝을 먼저 소비하기 시작한 서브컬쳐의 이야기는 키치 (kitsch)의 이야기와 결이 비슷하다.


키치라는 단어가 독일어에서 왔다던지 미학이나 예술의 철학과 관련 있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아주 단순하게 b급문화, “싸구려”와 “조잡함”을 세련되게 만드는 원동력 정도로 생각해보자. 10년 전의 유행은 촌스럽지만 20년, 30년 전의 유행은 다시 힙해지는, 유행은 돌고 도는 뭐 그런 원리다.


“싸구려”와 힙함은 정말 그냥 시선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레트로 감성을 소비하는 서브컬쳐도 비슷한 원리로 돌아간다. 디스코나 뉴잭스윙 같은 장르들은 DJ 타이거디스코나 8balltown의 기린같은 사람들이 놀라울만큼 일관적으로 파고 있고, 주로 대중가요에서 “복고풍 콘셉트”라고 하면 이런 장르들을 차용했을 경우를 이야기한다.


이적이 무한도전에서 장난식으로 만든 이 곡은 생각보다 키치함을 잘 포착했다.


반면, 같은 80년대와 90년대 특유의 낭만을 보다 자조적으로 소비하는 베이퍼웨이브와 퓨쳐펑크에서 우리는 시티팝의 흔적을 보다 뚜렷하게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해, 그 당시에 바라보던 미래나 사회의 모습과 오늘 우리의 모습의 차이에서 떠오르는, 직접 겪지 못한 시절에 대한 묘한 향수의 문화다.


이 엄청나게 마이너한 감성을 진지하게 들어보면 생각보다 매력있다. 나이트 템포는 아직도 꾸준하게 퓨쳐펑크 음악을 만들고 있다.


시티팝이 긍정과 낭만의 장르였던 만큼, 퓨쳐펑크는 그런 곡들을 디스코 형식으로 리믹스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학적으로 향수를 기반으로 한 퓨쳐펑크와 베이퍼웨이브는 필연적으로 시티팝과 맞닿아있다.


나이트 템포가 보여주는 'How to make future funk'. 시티팝 음원의 재생속도를 올리고, 드럼 머신을 이용해서 비트를 넣으면 기본적인 퓨쳐펑크가 완성된다.






힙스터, 등판!


노래와 영상을 찾아내서 리믹스를 하고, 오마주와 패러디를 하며 놀던 레트로 서브컬쳐는 이미 시티팝에 대해 잘 알고있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소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티팝이 뭔지 모르고, 퓨쳐펑크를 처음 듣고는 이게 뭔가 싶었을 것이다.


여기서 힙스터가 등장한다. 여기저기 새로운걸 찾아 돌아다니다가 저런 마이너한 곡들을 발견하고, 듣고 그냥 지나치는게 아니라, 더 깊이 파는 사람들. 리믹스를 듣고 원곡을 찾아보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곡을 듣고 원곡을 찾아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 곡은 나중에 JYP와 표절시비에 휘말린다.


게다가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이유는 알 수 없이 시티팝을 밀어준 유튜브의 영상 추천 알고리즘도 한몫 한다. 경로가 어찌됐던, 신선한 세련됨을 선사한 시티팝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그 수요를 채운 건 큐레이터 역할을 한 레트로 서브컬쳐의 일원들이었다.


김밥레코즈에선 시티팝 위탁 판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바이닐의 부활과 맞물려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들었던 빈티지 시티팝 LP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올라갔었다.


타이거디스코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그리고 김밥 레코즈 같은 음반점이 이런 큐레이터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시티팝이 왜 더이상 유행하지 않았는지와 맞닿아있다.






대중문화와의 화학반응


시티팝은 인디 뮤지션들의 작업물에서 점점 대중음악으로 퍼져나가면서 핫해진다. 가장 명확한 예시로는 Anri의 “Last Summer Whisper”를 샘플링한 재지팩트의 “하루종일”이 있다.


그 외에도, 골든두들의 “해변의 알파카”, 백예린과 프로듀서 고형석의 “La La La Love Song”의 커버, 윤종신의 “Summer Man”, 심지어 EXID의 “낮보다는 밤” 역시 시티팝의 음악적 문법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최초로 시티팝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콘셉트로 주장했던 예시는 오히려 전혀 시티팝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시티팝이 다시 서브컬쳐와 덕후들의 영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유빈의 컴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JYP의 실패


시티팝을 앞세워 컴백을 홍보한 유빈이 싱글 “숙녀”에서 보여준건 시티팝이 아니라 퓨쳐펑크에 더 가까웠다. 앞서 이야기 했듯, 퓨쳐펑크는 일부러, 자조적으로 만드는 b급의 느낌이라서 꽤 마이너한 감성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숙녀”의 제작자들은 의도적으로 b급 감성을 겨냥한게 아니라, 세련된 시티팝을 한다고 이야기 하면서 b급 감성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진지하게 멋을 의도하고 만들어진 b급 감성은 촌스러움과 큰 차이가 없다.


결과물을 보면 키치함이 작용하기에 충분한 지점인데, 제작자들은 자꾸 정직한 세련됨을 이야기 한다. 음악의 방향과 비쥬얼의 방향, 그리고 마케팅의 방향이 전부 어긋난 사례다.


기획에 대해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저작권 문제”로 발매가 취소된 “도시애” 에서 드러난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JYP의 제작자들은 나이트 템포에게 찾아가 그의 작업 방식을 베낀 다음, 그의 리믹스를 빼다 박은 곡을 개사해서 내려고 했다. 이건 자신들이 내걸려고 하는 장르와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대만의 뮤지션 9m88이 선보인 Plastic Love의 커버는 JYP와는 미묘하게 다른 접근이다. 아예 80년대 일본 음악프로의 형식 자체를 보다 확실하게 끌어와서, 자조적인 향수를 명확하게 활용한다.


이 맥락을 모든 사람들이 신경쓰고 있을리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은 유빈의 “숙녀”를 통해서 “시티팝”이라고 불리는 음악을 처음 접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들에게 선사된건 수많은 “복고풍 콘셉트”와 다를게 없는 상품이었다. 


신선한 세련됨이 결여된 채 시티팝이라는 간판만 남았다. 사람들이 시티팝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만도 하다. 안그래도 높은 시티팝의 진입장벽은 이런 JYP의 실패를  시티팝에 있어서는 치명타로 만들었다.






시티팝은 유튜브에 밖에 없다


바야흐로 스트리밍,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음악의 일상화의 시대다. 시티팝을 발견하고 듣기 시작한 힙스터들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음악이 얼마나 접근성이 좋은지, 다시말해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꽤 중요하다.


시티팝에 대한 한가지 좋지 않은 소식은, 일본 음악시장의 저작권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소수의 대형 레이블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 않아서, 일본에서 유통되는 모든 음악을 한곳에서 스트리밍하기에는 어렵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설명한다.


이 와중에 일본 음악시장은 폐쇄적인 태도까지 가지고 있다. 음악이 듣고싶으면 음반을 구매하라는 식이라서, 시티팝 음원들은 해외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 등 유명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유튜브에 올라오는 시티팝 음반들마저 항상 저작권 침해로 삭제되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시티팝만 듣자고 새로이 일본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옮겨가자니 수지가 맞지 않는다. 일본어를 모르는, 혹은 일본에 있지 않은 사람이 시티팝 덕질을 하는데에는 이렇게 구조적인 문제들도 작용한다.






반짝 했던 한줄기 희망


시티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식으면서 함께 끝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네이버 문화재단의 디깅클럽서울이다. 한국의 시티팝을 오늘날의 뮤지션들이 커버해서 재조명 한다는, 정말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5개의 커버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커버곡 후보에 있던 수많은 한국의 시티팝 곡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되살려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시리즈의 첫 타자로는 죠지가 김현철의 “오랜만에”를 커버했다.


개인적으로는 디깅클럽서울이 다섯 곡에서 끊기지 않고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시점이 이미 시티팝에 대한 인기가 식어가던 2018년 후반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차라리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트로는 살아있다.


그렇게 시티팝은 다시 서브컬쳐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타이거디스코는 여전히 레트로 음악으로 DJ를 하고 있고, 하세가와 요헤이는 여전히 시티팝 음반을 큐레이팅 하고, 김밥레코즈는 여전히 시티팝 음반을 판다.


힙스터들은 또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다른 장르들을 찔러보고 있다. 하지만 아마 처음보다는 시티팝을 찾아서 듣거나 앨범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나이트 템포는 해외로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레트로 서브컬쳐 자체가 더 커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시티팝이나 비슷한 레트로 감성을 가진 뮤지션들은 아직도 새로 계속 나오고 있다. 얼마전에 앨범을 새로 발매한 우주의 “도시의 밤”이나 최근에 데뷔한 솔로 아이돌 유키카의 “NEON”같은 곡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티팝스러운 스타일을 새롭게 구현했다. 시티팝은 죽은게 아니라, 은연 중에 대중문화에 녹아들어있다.






 


 



CREDIT


에디터 황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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